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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 연습/여행&출장

장거리 비행과 땅콩

by HSM2 2019. 8.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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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거리 비행과 땅콩



장시간 비행은 고문의 일종이다. 저려오는 엉치뼈와 건조해 지는 기관지를 느끼며 좁은 공간에 갇혀 있다 보면 집에 있는 침대가 그렇게 그리울 수 없다. 공항이 주는 생동감과 이륙의 설렘은 더럽게 맛없는 기내식을 먹으며 이내 사라진다. 공항을 그토록 멋지게 지어놓은 것은 아직은 형편 없는 비행기의 탑승감을 만회하기 위함일거다. 비루하고 촌스러운 공항을 지나 비지니스 같은 이코노미석을 가진 비행기에 오르는게 승객들에게는 더 좋을텐데 말이다. 영화는 어디서 이런 망한 것들만 모아 놓았는지 한편이 끝날 때마다 나도 모르게 한숨이 쉬어진다. 어떤 자세를 취해도 불편한 의자도 한몫 거든다. 숙면을 취하면 코를 골까봐 숙면방지설계를 적용한듯 하다. 이코노미의 한계일거다. 의자 바닥에 '아쉬우면 비지니스나 일등석을 타든가'라는 문구가 새겨져 있을 것 같은데 확인할 길은 없다.

기내식 이야기를 좀 더 하자면 차라리 CU 도시락이나 한솥을 주면 좋겠다. 한입도 먹기 힘든 치즈케잌을 보고 있노라면 난 정말 심각한 문제를 느낀다. 아무도 먹지 않을 거란걸 알면서 주는 이유는 뭘까. 그전에 이 치즈케잌은 어떻게 선택받았을까. 같은 가격에 무게가 더 나가는 것이 선정기준일까. 아님 납품하는 직원의 노래실력? 내가 다니는 학교 급식이 이랬다면 전학이나 자퇴를 고민했을거다. 내 손에 들린 핸드폰은 2g에서 5g로 변해가는데 기내식의 더럽게 맛없는 그 맛은 예나 지금이나 한결같다. 한국인 입맛은 분명 아닌데 지구인 입맛도 아닌 것 같다. 기내보관이 가능해야하고 조리가 간편해야 하니 이 맛이 최선일거라고 매번 자신을 속이려 하지만 내가 고릴라가 아닌 사피엔스라는 문제가 있다. 3분카레도 맛있고 햇반도 맛있다. 전투식량도 이보단 낫다.

기내식에 딸려 나오는 그럴듯하게 생긴 과일을 한입 베어물면 농사를 비행기 안에서 지었나 싶다. 빠른 속도 덕에 짧아진 거리만큼 과일의 맛도 짧다. 눈을 감고 먹었다면 수박인줄 몰랐으리라. 이세상 과일맛이 아니다.

기내에서 제공하는 먹거리중 가장 덜 맛없는 음식은 달짭쪼름한 미국땅콩이다. 이 공간 밖에서는 아무도 찾지 않는데 기내라는 섬에서는 상대적 우위를 점하고 있다. 얼미전 용도변경으로 인해 실시간 검색어 1위에 오르기도 했다. 의외로 이 땅콩의 정식명칭을 아는 사람은 드물다. 밖에서는 찾을 일이 없고 안에서는 찾지 않아도 주기 때문에 이름을 알 필요가 없었나보다. 그래도 그 이름을 한번 불러보자.

honey roasted peanuts

fishernuts 사의 제품이다. 얘내는 어떻게 그 오랜 시간동안 기내에 땅콩을 납품할 수 있었을까. 대한항공의 의리가 놀랍다. 땅에서는 명함도 못내밀 음식들이 어떤 이유에선지 선택되고 기내에 실린다. 기내에 반입되는 음식들에게도 오픈리그가 생겨야 한다. 리그가 시작되면 아마 지금 실린 음식들을 이 섬에서 다시는 볼 수 없을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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