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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 연습/책내용

성숙한 착함 vs 미숙한 착함

by HSM2 2019. 8.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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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숙한 착함 vs 미숙한 착함


  

 기독교가 씌워놓은 착한 프레임, 목회자 자녀의 위치에서 생긴 '착한아이 컴플렉스'등에 대해 고민해왔다. 사람들이 나를 통해 예수를 봐야 한다는 명령을 잘못된 방식으로 배웠기 때문에 채워진 사슬이고 씌워진 고삐이다. 예수를 닮는게 단지 착한 호구로 살라는 말이 아닌데 말이다. 예수님은 신성모독을한 반역자로 내몰려 죽임을 당했다. 당시 사회에서 심각한 수준의 '반동분자'였다. 지옥같은 세상에서 사회생활을 해본 적이 없어 멍청함과 착함을 구분하지 못하는 목사들에게 배운 잘못된 프레임을 벗겨낼 생각으로 읽던 책에서 좋은 구절을 발견했다. 


  다른 사람의 요청을 잘 들어주고, 늘 습관적으로 상대를 배려하는 사람들이 있다. 흔히 이런 사람들을 가리켜 '착하다'고 한다. 이게 과연 '착한'게 맞나? 혼란을 줄이려면 착함을 둘로 구분할 필요가 있다. '성숙한 착함'과 '미숙한 착함'이다. 먼저 '미숙한 착함', 이것은 간단히 말해 '순응'이다. 어른들의 말을 잘 듣고 시키는 대로 순순히 따르는 어린아이의 모습과 같다. 아이들은 힘이 약하고 비판적 사고가 발달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럴 수 있다. 그러나 나이가 들면 다르다. 비판적으로 사고하고 스스로 판단할 수 있는 나이가 되면 다른 사람의 생각을 그대로 받아들이지도 않고 누가 시킨다고 해서 그대로 따르지도 않는다. 그러니 어른이 아이처럼 다른 사람의 말을 잘 듣고 따라 한다면 착한 것이 아니라 미숙한 것이다. '아이-어른'의 관계에서는 필요했던 '순응'이라는 방식을 '어른-어른'의 관계에서도 반복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성숙한 착함'이란 무엇일까? 그것을 '마음이 어질고 선하다'는 의미다. 미숙해서가 아니라 오히려 성숙해서 그렇다. 이들은 자기 주관만 있지만 상대방의 입장을 존중할 줄 알고, 사람들의 시선이 아니라 자신의 내적 기준에 따라 옳고 그름을 구분해서 행동하고, 어려움을 겪는 누군가를 보면 안타깝게 여기고 친절을 베푼다. 많은 사람들은 '자기희생'을 착한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자기 희생에 바탕을 둔 선은 미숙함일 뿐이다. 미숙한 착함에는 의도가 있다. 칭찬이나 인정을 받으려고 하거나, 상대의 호감이나 환심을 사려고 하거나, 친절과 배려의 대가를 바라는 보상심리가 숨어 있다. [관계를 읽는 시간, 문요한,p25-26]


미숙한 착함을 버리고, 성숙한 착함의 영역으로 넘어가야 한다. 가방 큰 방해요소는 잘못 세뇌된 '교리'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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