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글쓰기 연습/일상

50원과 점원

by HSM2 2019. 8. 6.
반응형

50원과 점원


집근처 마트를 갔다. 이것저것 사고 계산대에 갔는데 할아버지 한 분이 계셨다. 작은 야쿠르트 여러개와 비피더스 하나가 올려져 있었다. 할아버지는 화면에 찍힌 가격을 보시더니 점원에게 따지기 시작했다.

"왜 여기는 하나에 1300원을 받지? 다른데는 1250원인데?"

비피더스 이야기였다. 점원은 어이없어하는 표정을 애써 감추며 대답했다.

"들어오는 가격이 그래요."

할아버지는 같은 이야기를 세번 더 했고 비피더스를 거칠게 밀며 환불해달라고 했다. 다른 곳 보다 50원이 비싸다는 이유였다. 환불하는 점원에게 같은 이야기를 세번 더 했다. 아주 무례한 말투의 반말로 말이다.

"여기는 매번 1300원을 받어. 응? 다른데는 다 1250원인데"

옆에서 보는 나도 분노가 치밀었다. 어떻게 저런 인격이 존재한단 말인가.

난 앞에 있는 할아버지가 지나온 삶을 모른다. 경험한 시대도 다르다. 나에게 보릿고개는 책속의 이야기였고 일제강점기도 직접 겪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 내 눈앞에서 할아버지가 보인 행동은 어떤 역사를 드리밀어도 이해가 불가능했다. 틀로 시작하는 단어가 턱까지 차오를 무렵 사고의 진행을 끊는 또다른 생각이 떠올랐다. 내 눈앞에 펼쳐진 어이없는 상황을 세대간의 갈등으로 해석하면 안된다는 생각이었다. 그를 모든 할아버지의 표준으로 일반화시키면 어떤 방법으로도 풀 수 없는 재앙이 시작되는 것이었다. 다행히 나에게는 좋은 반례가 존재했다.


나는 친할아버지와 한 집에 오래 살았다. 나의 할아버지는 돈을 쓰기보다 한푼이라도 더 쌓아두기 좋아하셨고, 부모님이 뭔가를 사다드리면 항상 가격을 물어보셨다. 할아버지가 생각하는 금액보다 높았을 때는 꼭 한마디를 하셨다. 돈에 대한 태도와 기준은 분명 우리세대와 달랐다. 하지만 할아버지는 며느리인 어머니에게 아직도 존댓말을 하시고 식사가 끝나면 그릇 나르는 것을 함께하신다. 퇴근하고 돌아온 내 손을 잡아주시며 '용허다'라고 말해주신다. 매일 하루도 빠짐없이 말이다. 할아버지가 누군가에게 무례하게 행동하시는걸 단 한번도 본 적 없다. 무엇보다 한 사람의 기분을 50원 만도 못하게 여기는 분은 절대 아니다.

오늘 일은 순전히 그 할아버지의 문제다. 그는 그런 사람이었고 그렇게 살아왔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에게 고통을 주었을지 눈에 선하다. 누군가의 상사였을 것이고, 누군가의 아버지, 누군가의 남편이었을 그의 생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게 다행이라고 생각된다. 인간의 수명이 100년 정도로 맞춰진 것은 분명 신의 축복이다. 영생하는 그들과 영원히 함께하는 삶은 그 자체가 지옥일 것이다. 살면서 '그들'을 마주칠때, 그들을 집단의 대표값으로 삼는 실수를 하지 않기를 바란다. 당신의 삶이 덜 풍요로워지는데 도움이 될 실수이다. 그를 만나면 피하고, 또 하나의 그가 되지 않기 위해 애쓰는데 집중하는 편이 낫다 .

반응형

'글쓰기 연습 > 일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90년생들이 처한 현실  (0) 2019.08.06
성격을 버리게 되는 과정  (0) 2019.08.06
대화 시 주의사항  (0) 2019.08.06
어린 아이와 같다는 것?  (0) 2019.08.06
할머니 세분  (0) 2019.08.06